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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유동 자택에서 말기암 투병 당시 권오헌 선생


ⓒ 민병래




4월 27일 오후 5시 서울대병원 1층 추도식장에서 '통일운동의 큰 어른 권오헌 선생'의 추도식이 열렸다. 권오헌은 폐암과 인후암에 맞서 오래도록 투병하다 서울 성북구 성가복지병원에서 25일 12시 9분 눈을 감았다(관련기 대학원 등록금 사: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말기 폐암환자로 투병 중입니다 https://omn.kr/266op)

1937년생인 권오헌은 청년 시절부터 눈을 감는 날까지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헌신해왔다. 그는 20대 때 굴욕적인 한일 수교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고 통일사회당에 들어가 문화국장으로서 문인들의 저항 활동을 지원했다.
국민행복기금 신청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한 이후에는 더 치열하게 민주화운동에 나서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해왔다. 급기야 권오헌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 사건으로 체포돼 3년 4개월의 징역을 살게 된다. 그는 만기출소해 1991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 양심수후원회를 만든 이래 수십 년 동안 회장을 맡아 노력해 왔다. 민주화를 신한은행 신용대출금리 위해 싸우다 옥중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지원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종군기자로 참전했다 34년이나 복역한 이인모 노인의 송환, 그 외 빨치산 혹은 공작원으로 내려왔다 잡혀서 수십 년간 감옥에 갇혔던 장기수의 북녘 송환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독재에 반대해 싸운 양심수만이 아니라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양심수 모두를 위해 한국장학재단 대출거절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그는 양심수후원회 회장으로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미선 대책위, 용산철거민살인진압공대위, 통합진보당 강제해산반대운동본부,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등의 대표도 맡아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싸움이 격렬해지면 터지기 일쑤인 최루탄도 늘 가까이 했다. 이 때문에 201 개인파산절차 7년 폐암이 발병했으나 그는 자기 몸을 돌보는 데 소홀했다. 폐암 투병도 힘든 터에 인후암까지 발병해 근 8년여 병마에 시달린 끝에 눈을 감고 말았다.

"이 정권이, 이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너희들은 잘못이 없다"










▲ 2025년 4월 27일 열린 권오헌의 추도식장면 그는 한평생 양심수없는 세상을 위해 헌신했다.


ⓒ 민병래




민주시민사회는 권오헌의 부음을 접하고 그를 '민주사회장'으로 모시기로 하고 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순덕 민가협 대표와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등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고 4·16연대, 4·9통일평화재단, 사월혁명회, 진보당과 정의당 등 수백 개 단체와 개인이 장례위원으로 참여를 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공동의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대표 한충목, 국가보안법7조부터폐지운동 박미자 대표 등 많은 민주·시민사회 인사들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함세웅 신부는 권오헌 선생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축하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고 인연을 소개한 후 "제가 많은 분을 만나 뵈었는데 통일운동, 약자들을 위한 운동, 감옥에 계신 분을 위해 운동하신 분 중에 분란 없이 사랑과 존경을 받으신 분은 우리 권오헌 선생님 한 분이 아니실까 생각하면서 제가 감히 바로 평화의 성자라는 칭호를 드렸습니다"라는 뜻 깊은 추도사를 했다.
이어진 추도사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권오헌 선생의 정신은 한마디로 민족주체적인 한반도 평화 정착입니다. 그 안에 국보법 폐지, 남북 간 평화와 공동번영 이 모든 것이 들어갑니다"라며 "호찌민이 적군인 미국으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듯 권오헌 선생은 우리 안 누구로부터도 존경 받을 유일한 사람이었다"며 마음 깊은 인사를 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도 추도사를 했는데 한총련 사건으로 수배자 시절 "이 정권이, 이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너희들은 잘못이 없다. 나는 언제나 애국 학생의 편이다"라며 권오헌 선생이 격려해줘 큰 위로를 받은 기억이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추도식은 권오헌 선생이 평생 즐겨 부른 노래 '죽창가'를 6·15합창단이 헌정하는 것으로 모두 끝났다. 권오헌의 시신은 28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을 한 뒤 오후 1시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된다.

남민전 사건 재심 판결에서 무죄 선고










▲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에서 발언하는 권오헌 그는 수십 년간 열린 목요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 양심수후원회제공




한편 권오헌은 2025년 2월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 사건의 재심 판결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월 10일에 열린 결심 재판에서 검사가 무죄를 구형해 예상된 판결이었다. 1979년 10월 9일 집 앞에서 연행된 선생은 치안본부대공분실에서 33일간 불법감금된 채 구타와 물고문을 당했다. 몸부림을 치다 수갑이 풀릴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병상에 있던 권오헌 선생은 이 결심 공판에 나가지 못 했는데 장경욱 변호사를 통해 영상으로 최후진술을 남겼다. 그중 일부를 인용한다(말씀하기가 힘들어 부정확한 발음에 연결이 안되는 부분도 있으나 원문 그대로 옮긴다).


내가 거동이 불편해서 도저히 법정에 갈 수가 없습니다. 우선 관계자 여러분께서는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 내 나이가 90이고 이제 가서 또 바로 잡은들 내게 오는 것이 뭐겠습니까마는 그러나 한 시대의 잘못된 것 당대를 살던 사람들이 그 잘못된 것을 소리치고 이렇게 잘못된 것을 밝혀내는 것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지난 뒤에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 당시에 해야 됩니다. 그 당시에 해야 효과가 있는 거고 또 그 당시에 어떤 법률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어떤 법률이든지 그걸 우리는 인정을 안 하고 다만 이제 앞으로 긴급 조치 또 유신 시대 이런 것이 사라졌을 때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우리들이 그때 고군분투한 것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지 않을까. 지금 힘이 없습니다. 방 안에서 움직이기도 힘들고 병원에서조차 치료를 그만두기로 선언할 정도로 이제 저한테는 치료를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선언을 받았어. 그래서 이렇게 죽게 된 몸이 과거 지난 일 가지고 뭘 지금 또다시 시시비비를 따지나 그런 생각이 나긴 하지만… 그러나 사람이 누가 언제 죽든지 말든지 한 시대를 살던 사람이 어떤 시대 상황에 따라서 행동을 했다면 그것이 정당한 건지 부당한 건지를 밝혀 밝혀볼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