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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아버지 5살 때 여의고 인혁당 사건으로 40살에 남편 잃어 인혁당 사건 진실, 밝혀지리라 믿고 남편 등 4인 열사 묘지 한군데 모아
2018년 사형폐지의 날 행사에서 “한국과 같은 문명국가에서 다시는 사람의 생명 강제로 가져가선 안 돼”
지난 4월26일 오후 10시께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하재완 열사 부인 이영교님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1935년 대구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났다. 낙동강에 인접한 하빈면은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가 있는 곳이다. 부친 이봉로(본명 이세봉)는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북경에서 ‘제2유림단 사 신한은행 전세대출 건’으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다. 부친은 그가 다섯 살이 되던 1940년 1월4일 옥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운명하였다.
남편 하재완과는 집안의 소개로 스물세 살이 되던 1958년에 만나 결혼했다. 남편도 장인의 삶을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하재완이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감옥에 있을 때 “우리 장인도 이 옷(수의) 에스더에스 을 입고 돌아가셨는데, 나도 이 옷을 입고 죽게 생겼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집에 보관해 오던 남편의 수의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2015년 이한열 기념관 ‘보고싶은 얼굴’ 전에 걸린 이재삼 작가의 ‘비욘드(Beyond) 하재완\' 작품 앞에 선 고인 집주인 . 이창훈 제공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하재완은 1975년 출옥한 김지하 시인이 감옥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적은 ‘고행… 1974’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1974년 4월25일 중정은, 배후자로 지목된 하재완의 이름이 들어간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한다. 하재완은 4월2 산업은행 지점 0일께 체포되었다. 가족 증언에 따르면 ‘마침 형수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라 목욕탕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남편이 잡혀가자 이번에는 남편과 친했던 친인척들이 경찰서에 잡혀가 조사를 받고 나왔다. 어수선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남편이 무지막지한 고문까지 받으며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큰 사건이기는 하지만 수입차 할인 중사 출신에 죄지은 것이 없는 남편은 조사받다가 곧 나올 것만 같았다.
그가 남편의 구명운동에 나선 것은 첫 공판이 열리던 6월17일이었다. 이날 남편과 같이 잡혀갔던 사람들의 부인들과 가족들을 만나 ‘탄원서를 작성해서 대통령에게 보내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로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정치권과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 남편의 무죄를 호소한다. 그러자 경찰들이 따라붙어 ‘조용히 있으면 남편이 곧 석방될 텐데 왜 그러냐’며 달래기도 하고, 심지어 경찰서로 연행하여 자식들을 거론하며 겁박도 했다.
1975년 2월15일 국내외의 압력을 받고 있던 박정희는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168명을 석방한다. 하지만 하재완을 비롯한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은 제외되었다. 이때 출감한 사람으로부터 하재완의 옥중 소지품 일부를 건네받았는데, 그 속에 남편이 쓴 글귀가 하나 있었다.
“그 날의 강대국 수뇌들이 저희끼리 제멋대로 삼팔선을 긋지만 않았어도 오늘날 우리 국토 우리 겨레는 오늘의 불행을 겪지 않았고 지금쯤 오붓한 살림의 자족을 누린다.”
1975년 2월18일 영국 일간 ‘더 타임스’에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 가족 증언을 토대로 ‘사형을 판결한 법원의 공판 조서가 변경되었다’는 피터 헤이즐허스트 특파원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 구명운동에 나선 시노트 신부는 이 기사에서 “피고인 부인 4명(고인도 포함)과 함께 확인한 공판조서에는 ‘아니요 나는 하지 않았소’라고 말한 부분이 ‘예 내가 했습니다’라고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내용만으로 바뀌어 적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기사에는 또 “남편은 자기가 3일 동안 고문당했으며 잠자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고 탈장 때문에 고생했으며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고 74년 7월8일 법정에서 말했다”는 고인의 발언이 실려 있다.



하재완 열사가 옥중에서 쓴 글귀. 이창훈 제공


이런 모든 구명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1975년 4월9일 오전 8시5분 사형수 8인 중 일곱 번째로 남편의 형은 집행되었다. 장례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기관원들은 빨리 땅에 묻으라고 재촉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 믿고 무덤은 한곳에 모아두자고 했다. 그래서 경북 칠곡에 있는 현대공원에 도예종, 송상진, 여정남 그리고 하재완의 묘가 마련되었다.
기관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장례식 때는 못했지만,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고인들의 무덤 앞에 묘비를 세웠다. 비의 남편 이름 앞에 ‘민주인사’를 뜻하는 ‘민사’를 적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묘비는 기관원들에 의해 사라졌다.
남편이 가고 없는 1976년 11월 즈음에 그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다. “이제 당신은 저희들의 당신이기보다 이 민족의 당신이 되었습니다. 여보, 믿어주세요. 당신의 집념과 염원은 이 민족의 역사에 길이길이 화려하게 빛날 것입니다. 언제인가 그날에…”
그의 염원은 31년이 지난 2007년 1월에 이뤄졌다. 법원 재심으로 남편의 무죄가 확정된 것이다. 하지만 무죄판결로 죽은 남편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는 2018년 10월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형제폐지의 날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한번 떠난 이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말을 걸 수도 없습니다. 사형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바로 사형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문명국가에서 다시는, 다시는 사람의 생명을 국가가 강제로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이창훈/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