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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새 정부에 주는 교훈





서경호 논설위원



#1. 정장 상의를 벗은 채 와이셔츠 차림으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청와대 참모진과 경내를 산책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강렬했다. 상의를 벗을 때 경호원이 도와주려 했지만 대통령이 이를 사양하고 직접 했다. 이에 앞서 참모진과의 오찬은 원형 테이블에서 ‘겸상’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이 취임 이틀째인 2017년 5월 11일 장면인데 다음날 모든 신문에 큼지막하게 보도됐다. “권위를 강조하 sbi저축은행 모델 이선우 기보다 참모들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 “격의 없는 풍경? ‘참모와 소통’ 미국 웨스트 윙이 모델” 등 언론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웨스트 윙은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진 사무실이 있는 공간이다.

#2. 다음날인 5월 12일 취임 사흘째인 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환매조건부매입 를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첫 외부 공식행사였다.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부와 공공부문부터 좋은 사용자가 될 것이고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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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무시하고 가격변수에 개입했던 문재인 정부의 잘못 새겨야 낙선 후보의 좋은 공약 선 연계영업 별해 채택하면 협치의 공간 넓어질 것 진보면서 규제 많이 푼 정부로 기억되면 그 자체가 정치적 성공 민주당 정부에선 집값 오른다는 학습효과…불안 빨리 불식해야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1일 청와대 참모진과 오찬을 함께한 뒤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 올크레딧 신용등급무료조회 고 있다.


인천공항은 간접고용 비중이 유난히 컸다. 종사자의 90%에 가까운 1만 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인천공항이 앞장서면 42만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는 가슴 벅찬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의 선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은 노-노 갈등으로 홍역 할부회선 증설 을 치렀다. 공공부문의 정규직화는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졌고 청년의 공공부문 취업 기회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였고 나라 전체의 정규직 전환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소주성과 아파트값 급등으로 실패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예상대로였다. 새 정부는 전임 정부인 윤석열 정부는 물론, 무엇보다 같은 민주당 계열인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열린 ‘촛불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정부는 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검찰주의자’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소득주도성장(소주성)으로 명명됐던 대표 경제정책의 좌절과 서울지역 아파트값을 급등시킨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가계소득을 올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으로 고용안전망을 확대하고 인적 역량 강화와 같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리자는 게 ‘소주성’의 취지였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속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임기 내내 시끄러웠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진보 학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일자리라는 마차는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끄는 결과이기 때문에 마차를 말 앞에 둘 수 없다”고 했다. 진보·개혁성향의 경제학자 변형윤의 아호를 따 ‘학현(學峴)학파’로 불리는 학자들도 문재인 정권 말기인 2021년 소주성 비판에 나섰다. ‘시장의 작동원리를 무시하지 말고 가격변수에 대한 개입은 최대한 자제하라’, ‘정부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라’ 등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임금은 올리는 게 아니라 오르는 것이라는 상식을 지켜야 했다.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리는 것보다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해서 저절로 임금이 올라가게 하는 게 정공법이었다. 이들 학자가 주축이 돼 2021년 9월 『정책의 시간』을 펴냈다.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반감을 가지게 된 이유는 옳든 그르든 지금까지 나름대로 관행과 규칙을 통해 이루어졌던 경제 활동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고 바꾸려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나 ‘제로페이’와 같은 정책 사례에서 정부가 국민의 삶이 체현된 시장의 행태를 고려하지 않고 직접 시장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자세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무효한지를 확인한다.”
소주성은 진보학계의 ‘아픈 손가락’



취임 사흘째인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에서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를 열고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정부는 막판에 소주성 ‘결산’을 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2022년 3월 『소득주도성장, 끝나지 않은 여정』이라는 제목의 전자책을 ‘조용히’ 냈다. ‘문재인 정부 5년의 평가와 과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소주성을 옹호하는 입장이 주된 흐름이었지만, 원승연 교수의 ‘내재적 비판’도 담았다. 원 교수는 “소주성은 진보 경제학계의 입장에서는 아픈 손가락과 같다”며 “그러나 정책의 좌절과 불공정한 비난을 단순히 안타까워하기보다는 그 결과가 나타난 현실을 받아들이고, 국민이 진보적인 가치관과 그 경제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경제정책을 벼리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던 홍장표 전 수석은 이 책에서 “소주성은 우리가 과거에는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라며 “최저임금이 고용 참사를 초래했다는 야당 정치권의 판단과는 달리, 학계에서는 합의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학계의 엄밀한 결론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정책 실패가 아니라면 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겠는가. 이론적 틀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제정책이 나오기에 십상이다.
정책 부작용 바로 고치는 게 실용 기본사회 구상부터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 등에 이르기까지 선거 공약으로 냈거나 지난 정부의 재의요구권을 넘지 못했던 법안들이 새 정부에서 시행되고 정책화할 것이다. 민주당이 예상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면 현실에 눈감지 말고 신속하게 정책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이재명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왔던 실용주의라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어제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낙선 후보의 좋은 대선 공약을 살리는 방안도 고민했으면 한다. 그 자체로 새 정부가 선택 가능한 정책의 폭을 넓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낙선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마음을 다독이는 정치적 효과도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의 절반을 끌어안으면 협치의 공간은 그만큼 넓어진다.
김문수 후보는 규제혁신처 신설을, 이준석 후보는 규제기준국가제를 공약했다. 현재 총리실 산하의 규제개혁위원회를 별도의 전담부처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여럿이었다.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규제개혁부 신설을 공약했다. 규제 전담부처를 만들고 대통령이 수시로 회의에 참석해서 힘을 실어주면 좋겠다.
규제기준국가제는 각 산업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해당 산업 분야 규제를 정하는 제도다. 이를테면 미국이나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정보기술(IT) 사업이라면 무조건 한국에서도 사업기회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규제기준국가제는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 전직 경제 관료들이 지난 20대 대선을 앞두고 펴낸 『경제정책 어젠다 2022』에서 제안한 바 있다.
규제 개혁은 돈 안 들어가는 성장 정책이다. 단기적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되고 중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여 혁신성장의 효자 노릇을 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이재명 정부가 5년 임기를 마칠 때 ‘규제 개혁에 환장한 진보정부’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 정치인인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전향적인 복지 정책을 담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고 실제 집권해서도 복지 정책을 확대했던 게 임팩트가 있었다”며 “진보정부가 규제개혁에 적극적이면 임팩트가 있을 것이고 돈 많이 쓴 정부보다 규제 많이 푼 정부로 기억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성공”이라고 했다. 최 소장은 대선 일주일 전에 후보별 득표율을 ‘이재명 49%, 김문수 42%, 이준석 8%’로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다(실제 득표율 이재명 49.42%, 김문수 41.15%. 이준석 8.34%).
‘똘똘한 한 채’ 쏠림현상 방치 말아야 부동산 공약 중에는 이준석 후보의 59㎡ 소형평수 아파트 공급 확대 방안이 눈길을 끌었다. 소형 평형이지만 방 3개, 화장실 2개가 있는 아파트라면 주택 소유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 59㎡ 평형을 많이 공급하면 파격적으로 용적률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로 공급을 유도하는 방안이다. 이번 대선에서 부동산은 특별한 이슈가 아니었지만, 현재 주택시장의 극단적인 양극화는 고민거리다. 건설 경기 부양이라는 과거의 익숙한 선택으로 회귀하려는 유혹을 떨쳐야 한다. 서울 일부 지역 ‘똘똘한 한 채’로의 쏠림 현상이 지역과 계층 간의 격차를 더 키우지 않도록 ‘1가구 1주택’ 과세 혜택을 재점검하고 보유 주택 수가 아닌 보유 주택의 공시가격을 합산해 세금을 차등 부과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민주당 정부에서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뛰었다는 과거의 학습효과에 따른 시장의 기대와 불안을 조기에 불식시켜야 한다.
입법부를 지배하는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나오면서 국회와 행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는 걱정들이 많다. 일리 있지만 뒤집어보면 다른 측면도 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혼연일체로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해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절호의 기회로 만들었으면 한다”며 “진보정부가 노동개혁을 비롯해 지지층의 어려움을 단기적으로 감수하는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국민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