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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서세혁 작성일25-06-21 00:28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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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레옹 제롬, 디오게네스(일부 확대), 1860, 캔버스에 유채, 74.5x101cm, 월터스 미술관



편집자 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미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풍성한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좋아아이폰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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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에 잡히고도
‘당당한’ 인질, 왜?




주세페 데 리베라, 디오게네스, 1637, 캔버스에 유채, 76x61cm, Gemäldegale오리온 주식
rie Alte Meister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저놈은 무엇이 그리 당당한가.
해적 선장 스키르팔루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스키르팔루스는 부하들이 막 잡아 온 인질 무리 앞에 섰다.
모두가 퀭했다. 그런 이들 가운데 한 명. 딱 한 사내만알라딘설명
은 풍기는 분위기가 묘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울지도, 떨지도 않았다. 곧 노예로 팔릴 처지라는 걸 알 텐데도 그저 천연스러웠다.
“당신 이름이 뭐요?”
“디오게네스요.” “혹시 왕족이오?”“하! 내 몰골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드오?” 디오게네스가 웃으며 되물었다. 스키르팔루스는 그의 행색을 찬찬히 살폈다. 그FX외환거래
가 걸친 건 기울 수 없을 만큼 낡은 옷이었다. 손톱에는 땟국물이 잔뜩 묻었고, 까맣게 탄 두 발에선 짙은 악취만 올라왔다.
그렇다면 그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리라.
재주였다. 외국어를 하든, 의술 또는 악기연주 지식이 있든, 하다못해 뜀박질을 잘하든 대단한 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래. 주무따
그렇다면… 당신은 뭘 잘하오?”
스키르팔루스가 물었다. 디오게네스는 여기에 대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이 너무 기상천외했다. 그래서 곧장 다시 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똑같았다.

나?
아까 말하지 않았소?
나는 지배(支配)를 잘한다오.


아, 그냥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자일 뿐이었는가. 스키르팔루스는 돌아섰다. 쓴웃음도 나질 않았다.


‘노예’ 주제에…
“내가 주인이 되겠다”




주세페 안토니오 페트리니, 디오게네스, 1750년경, 캔버스에 유채, 98x75.5cm, 프라도 미술관


“…그러니까, 노예 말고 주인을 사려는 이가 있는지 찾아보란 말이오.”
디오게네스는 노예 시장에 팔려 온 후에도 이런 말이나 했다. 황당한 표정을 짓는 노예상을 등진 채 직접 눈알을 굴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저 사람이오!”
그는 외침과 함께 상인에게 달려들었다. “나를 저 사람에게 파시오. 저 자는 주인이 있어야 하는 인간이오.” 어디 감히 노예 따위가…. 상인이 손찌검을 하려는 순간, 디오게네스가 가리켰던 사내가 다가왔다. 본인 이야기를 한 걸 눈치챈 게 분명했다.
디오게네스가 점찍은 사내 이름은 크세니아데스.
그는 값비싼 보라색 테 장식이 있는 옷을 두른 부자였다.
“그대는 내 노예가 아닌 내 주인이 되겠다고 말한 건가?”
“그렇소.” 디오게네스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다. “나리. 불경을 용서하십시오.” 노예상만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내가 이 자를 데려가리다.” “에?” 크세니아데스의 말에, 노예상은 딸꾹질 터지듯 몸을 들썩였다. 크세니아데스는 정말로 돈을 꺼냈다. 에누리도 없이 값을 냈다.
“한 번 더 확실히 말해두겠소.”
디오게네스는 크세니아데스와 함께 길을 떠나기 전, 그를 다시 세워둔 채 말했다.

그대는 내게 복종해야 하오.
내가 노예, 당신이 주인이라 해도 그렇소.

의사나 배의 키잡이가 종이라고 한들,
그 사람이 말하는 건 따라야 하니까.


그는 이처럼 끝까지 당당했다.

지금껏 그를 흥미롭게 바라본 크세니아데스는 픽하고 웃었다. 어디 끝까지 해보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부자 또한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장 레옹 제롬, 디오게네스, 1860, 캔버스에 유채, 74.5x101cm, 월터스 미술관


초췌한 모습의 사내가 낡은 항아리에 몸을 맡기고 있다.
거지와 다름없는 그가 디오게네스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기름이 끼었고, 몸은 씻은 적이나 있는지 노랗고 거무튀튀하다. 그가 허리에 두른 건 옷이자 이불이다. 재산은 지팡이와 천 쪼가리, 어디서 주운 듯한 등불이 전부일 터였다. 그런 그와 함께하는 건 몇 마리 들개뿐.
장 레옹 제롬의 <디오게네스>는 그가 해적에게 잡히기 전, 그러니까 노예 생활에 나서기 전 모습을 상상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 그는 이처럼 일관되게 기이한 행태를 보였다.

실존 인물이라
더 놀라운 그의 존재




야콥 요르단스, 정직한 사람을 찾는 디오게네스, 1642, 캔버스에 유채, 233x349cm,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그는 미친 소크라테스였다.

플라톤


실존 인물이기에 더 놀라운 사람, 디오게네스.

그는 단지 광인이었을까. 범인(凡人)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차원 높은 사유를 한 천재였을까. 디오게네스의 노예시장 이야기는 그를 둘러싼 일화 중 하나밖에 되질 않는다. 이 인간의 ‘비범한’ 행적을 보다 많이, 한층 깊이 살펴보자.

“가장 높은 곳 가려면”
물음에 얻은 ‘알쏭달쏭’ 답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디오게네스, 1882, 캔버스에 유채, 249x177.4cm, 뉴사우스웨일스미술관


디오게네스는 기원전 412년경 흑해 남부 연안 도시인 시노페에서 출생했다.
그는 원래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런 그의 삶이 뒤집혔다. 아버지와 그가 벌인 일탈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환전상이었다. 그 연장선으로 나랏돈을 관리하는 일도 했다. 아버지는 디오게네스와 함께 범죄를 꾀한다. 창고에 쌓인 진짜 돈을 따라해 위조지폐를 찍은 것이다. 금방 걸렸다. 감옥에 잡혀간 아버지는 얼마 안 돼 죽었다. 가담자로 나선 디오게네스도 벌을 받았다. 추방형을 받고 쫓겨났다. 단박에 빈털터리가 돼 길바닥에 나앉고 말았다.
디오게네스는 델포이 신전부터 찾았다.
그곳은 예언의 신 아폴론을 모시는 사제가 있는 장소였다. 뭘 물어보면 모호하게나마 답을 주는 공간이었다.
“가장 높은 곳으로 가려면 뭘 해야 합니까.”
“두루 쓰이는 것을 바꾸시오.” 디오게네스가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대해 돌아온 말이었다. 그는 이를 듣고 고심했다. 먼저 떠오른 건 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통용(通用)되는 화폐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 짓거리를 또 하라는 건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따르고 부려야 하는 것.법과 관습이었다. 따지고 보면 돈, 이에 따라 이뤄지는 거래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더 높은’ 차원에서 두루 쓰이는 무언가. 디오게네스는 생각을 멈췄다. 이번에는 화폐 아닌 법과 관습, 나아가 인류의 사상과 체계를 뒤엎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덕’만 있으면 된다
쥐를 보고 깨달음을 얻다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1511, 프레스코, 550x770cm, Apostolic Palace





디오게네스의 모습.


디오게네스는 이제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를 알았다.
무한한 질문법, 이른바 산파(産婆)술로 법과 제도에 앞장서 의문을 표했던 아테네의 소크라테스. 이미 죽고 떠난 그 대신 그의 제자인안티스테네스 밑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는 디오게네스가 아테네 땅을 밟은 이유였다. 그가 그 도시에 온 시점은 학자마다 다르게 본다. 기원전 380~370년 안팎으로 보는 게 대부분의 시선이다.
잘 찾아왔다.
이 철학자의 가르침은 명징했다.
사실 우리는 덕(德)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이 덕을 쌓기 위해선 선한 마음을 우선시하는 한편 외모와 재산, 명성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선한 마음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또,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다라야 할 행복은 뭘 해야 쉽게 접할 수 있는가.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 디오게네스는 이 두 개념에 대한 더 속 시원한 답을 내놓고 싶었다. 철학은 다른 말로 천착의 학문이다. 그는 매일 밤 고뇌를 이어갔다.
어느 날, 쥐 한 마리가 방구석에서 모습을 보였다.
놈의 움직임은 가벼웠다. 녀석은 좋은 음식도, 포근한 잠자리도 찾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먹을 만큼만 먹었다. 거기가 어디든 잘 수만 있으면 눈을 붙였다. 그런데도… 그것으로 충분해보였다.오. 디오게네스는 깨달음을 얻었다.

‘개처럼’ 사는 게
인간처럼 사는 일보다 낫다?




에드윈 랜시어, 알렉산더 대왕과 디오게네스, 1848, 캔버스에 유채, 142.9x112.4cm, 내셔널 갤러리


키니코스학파. 다른 말로 견유(犬儒)학파.
소크라테스 제자 안티스테네스가 창시하고 그의 제자 디오게네스가 계승한 이 학파는, 고대 철학 중 가장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견유학파는 개 견(犬)에 선비 유(儒)를 쓴다.
이 이름처럼 개(짐승)를 따라 ‘개처럼’ 살아보자는 게 핵심 정신이었다.
이게 웬 이상한 말인가.
짐승을 움직이는 건 본성뿐이다. 돈과 권력 등 그 이상 원하는 게 없으니 상식 밖 일탈을 벌이지 않는다. 앞서 디오게네스가 관찰한 쥐도 그랬고, 거리의 개와 수풀 속 맹수도 그랬다.
보다 풀어 말하자면, 이들은 늘 낮은 기대치를 갖고 살았다.
자연스럽게 차오르는 1차원적 욕구 따위야 먹고, 자고, 싸는 등 가장 쉬운 방식으로 해소했다. 이것 말고는 무언가 고집할 이유도, 매달릴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반목과 질투로 선한 마음을 꺾을 일이 적었고, 고양과 충족으로 채워지는 행복을 접할 기회는 잦았다.
반면 인간은 어떤가.
사람은 고차원적인 무언가를 원하기에 사심(私心)을 품는다. 설령 그 욕구를 실현한다 한들 만족하지 않는다. 갈증만 깊어지는 소금물 들이켜듯 계속해 손을 뻗는다. 누구 말마따나 욕심은 끝이 없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렇게 선한 마음에서 멀어진다. 결국 행복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게 된다.



로비스 코린트, 디오게네스, 1892, 캔버스에 유채, 178x208cm, Kunstforum Ostdeutsche Galerie


따지고 보면 법과 관습, 사상과 체계 모두 원래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짠 틀이지 않은가.
그런데, 인간이 편해지려고 만든 소유권 제도가 현실에선 독과점(獨寡占)의 악습을 부르고 있었다. 인간이 안전해지기 위해 만든 형벌 제도는 음모와 모략, 정치 싸움의 수단으로도 오남용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점도 많이 있기야 하지만, 부작용이 분명 만만치 않았다.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꼽힌 소크라테스의 죽음 또한 따지고 보면 인간이 만든 제도 탓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이것만으로 보면, 개와 인간 중 어느 무리가 당장 더 덕 있는 삶을 사는가.
견유학파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처럼’ 살지 말자. 짐승처럼 자연적으로 살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이다.
체제.
즉, 인류에게 두루 ‘쓰임을 당한’ 삶의 방식을 전복하는 것. 디오게네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과 안티스테네스의 가르침을 이렇게 소화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개’가 된 그의 일상은




카미유 마실, 사람을 찾는 디오게네스, 1865


디오게네스는 본인부터 ‘개 같은 삶’을 추구했다.
그는 노숙 생활을 했다. 버려진 술독에서 먹고 잤다. 옷은 낮이면 돗자리, 밤이면 이불로 썼다. 이 또한 기원전 380~37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의 재산이라고 할 건 표주박과 지팡이 정도였다. 개가 땅에 머리를 박고 고인 물을 마시는 걸 보곤 표주박마저 냅다 던져 깨버렸다고도 한다.
그는 항아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살았다.
그렇게 아테네와 코린트를 오갔다는 말도 있고, 항아리 생활은 코린트에서만 했다는 설도 있다.
디오게네스는 날 좋으면 햇볕 밑에서 늘어지게 잤다.
디오게네스는 그렇게 평화를, 행복을 끌어안았다.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상태기에,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고도 불편한 게 없었다. 당장 쾌락을 얻고 싶을 때는 그 자리에서 그짓을 했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첫째. 자연스러운 욕구가 일면 가장 쉬운 방식으로 풀어버린다.둘째. 자연스럽다는 건 부끄러워할 게 아니기에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그는 매 순간 이 가치관을 충실히 따랐다.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디오게네스,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는 디오게네스, 17세기경, 패널에 유채, 24x31cm


종종 기행도 벌였다.
그는 때때로 대낮에등불을 든 채 거리를 쏘다녔다.
“뭐 하시오?” 누군가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

나는 (정직한)사람을 찾고 있소.

정말 눈을 씻고 뒤져봐도
그런 이를 찾을 수 없구먼!


모두가 가식과 위선 아래서 본능을 숨긴 채 살아간다는 걸 비꼰 일화다. 앞서 소개한 제롬의 그림 속 디오게네스가 등불을 든 건, 이러한 이야기를 참고한 것으로 분석된다.

디오게네스는 어느덧 아테네의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그가 데굴데굴 굴리는 항아리를 따라 가르침을 얻으려는 추종자도 늘었다. 물론, 현 체제에 저항하는 괴짜로 비친 만큼 적도 많았다.



케사르 반 에버딩헨, 정직한 사람을 찾는 디오게네스, 1652, 캔버스에 유채, 75.9x103.6cm,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디오게네스를 웃기게 본 부자가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자기 집을 자랑하며 모욕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디오게네스에게 붙어 화려한 정원, 반짝이는 가구로 가득한 방을 소개했다. “자네 항아리와 달리 지저분한 곳이 없으니 마음대로 침을 뱉지 마시게.” 부자는 으쓱하며 말을 걸었다.
디오게네스가 가만히 있었겠는가. 그는 당장 입안 가득 가래를 모으곤… 부자 얼굴에 침을 뱉었다.

미안하오.

욕심이 잔뜩 묻은 선생 얼굴이
잠깐 쓰레기통처럼 보였소.


그는 그렇게 한 방 먹였다.

언젠가 디오게네스는 또 다른 연회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개가 맨발로 찾아왔군!” 짓궂은 주최자는 그에게 뼈다귀를 던지며 이렇게 놀렸다. 이를 받아 으적으적 씹던 디오게네스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그에게 오줌을 갈겼다.

개는 원래 이렇게 한다오.


이 말과 함께. 그렇게 또 한 방 먹였다.


“소원?…비켜주시오”
알렉산더 대왕과의 조우




가스파 드 크레이어, 알렉산더 대왕과 디오게네스, 1625~1630, 캔버스에 유채, 196x278cm, 발라프-리샤르츠 미술관


“왜 그자는 오질 않소?”
세계의 패권자,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가 신하에게 물었다.
기원전 335년께. 알렉산더는 그의 정복 활동을 위해 코린트를 찾았다.
무적의 지도자가 온 만큼 이곳에선 대규모 환영단이 꾸려졌다. 일대 유명인이 모두 모였다. 딱 한 명이 없었다. 또 디오게네스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실망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둘 만큼 철학에 조예가 있었다. 디오게네스의 명성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내심 디오게네스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던 알렉산더 대왕은, 차라리 몸소 찾아가기로 한다.



조반 바티스타 랑게티,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대왕, 1650, 캔버스에 유채, 142x133cm, 피타코테카 케리니 스탬팔리아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오.”
알렉산더 대왕이 독 안에서 뻗은 채 잠든 디오게네스를 깨워 말을 걸었다. “나는 디오게네스. 개라오.” “왜 개인가?” “뭘 주는 이에게는 꼬리를 흔들고, 주지 않는 자에게는 짖고, 나쁜 놈들은 물어뜯기 때문이오.” 그는 과연 별종이었다. “그대는 왕인 내가 무섭지 않소?” “당신은 좋은 존재요, 나쁜 존재요?” “물론 좋은 쪽이라오.” “그러오? 좋은 존재를 왜 무서워해야 하오?” 디오게네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를 이렇게 대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는, 그런 마음이었을까.
디오게네스의 반응을 인상 깊게 여긴 알렉산더 대왕은 곧장 파격 제안을 했다.
“나는 일찍이 그대의 지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소. 내가 그대를 위해 무언가 해줄 게 없겠소?”
이는 세상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오, 때마침 바라는 게 있소.” 디오게네스가 웃으며 답했다. 역시 그 또한 절대 권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가. 알렉산더 대왕이 후련함과 실망감을 함께 보이려는 순간….



존 마틴,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 22x33.5cm, Hatton Gallery



비켜주시오.


“뭐라고?” “그대가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옆으로 조금만 비켜달란 말이오.” 그게 다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허탈함에 웃고 말았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나도 디오게네스처럼 살고 싶군.” 그는 혼잣말을 하며 신하들과 함께 돌아섰다. “나처럼 살고 싶다? 당장 내 옆에 누워있으면 되는걸.” 직후, 알렉산더 대왕은 디오게네스의 이런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했다는 설도 있다.
역사상 가장 기묘한 철학자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복자의 대면.
이는 부잣집에 침을 뱉고, 귀족 다리에 오줌을 갈기는 등 갖은 일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디오게네스의 결기와 믿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비범했던’ 그의 이유
노예서 총책임자로?




클로드 비뇽, 랜턴을 든 채 정직한 사람을 찾아 나선 디오게네스, 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끝으로 다시 디오게네스가 해적에게 잡혀 노예 명찰을 달게 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언젠가 디오게네스는 여행을 결심했다. 그저 항아리 생활이 지겨워져 그랬다는 말이 있다. 그러다 재수 없게 해적선에 납치됐고, 어쩌다 노예상을 거쳐 보라색 옷의 부자 크세니아데스 아래 종으로 들어가게 된 건이었다.
이제 당시 그가 보인 담대한 모습(뭘 잘하느냐는 말에 “나는 지배를 잘한다”는 식의…), 있는 자와 가진 자를 업신여기는 태도(본인을 산 부자에게 “나는 종이지만, 그대가 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식의…)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든 스스로 자연스러운 모습 자체로 있을 자신이 있기에 두려움도 없었던 것이리라.
디오게네스는 본인을 ‘너그럽게’ 대해준 크세니아데스(그 또한 안목이 있었는 듯하다)의 종으로 들어간 후 그의 자식 지도를 맡았다.
디오게네스는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물과 음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쳤다. 신묘한 지침이 있긴 했는지, 녀석들이 나날이 총명해지는 등 수업 효과는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이 덕에 디오게네스는 곧 크세니아데스 집의 총책임자도 될 수 있었다.

끝까지 기묘했던 생활
그런 그가 주는 가르침은




퀸린 마크, 알렉산더 대왕과 만난 디오게네스, 1784, 51.7x40.3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여기까지 왔다면 이 괴짜 철학자가 언제 어떻게 생을 마감했을지도 궁금할 것이다.
그는 끝까지 그다웠다.
그의 죽음에 대해선 몇 가지 다른 설이 있다. 일단 스스로 숨을 참아(!) 세상과 등졌다는 말이 있다. 살아있는 문어를 먹고 콜레라에 걸려 죽었다거나, 그 문어를 굶주린 개들에게 건네던 중 한 녀석에게 다리 힘줄이 물려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망지로는 아테네와 코린토스 등이 거론된다. 기원전 323년경. 당시 나이는 아흔 줄에 닿았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그렇게 저승길에 오른 디오게네스는 이미 한참 전 죽은 알렉산더 대왕과 다시 만났다.

정복자와 노예가
다시 만났군!


알렉산더 대왕이 이렇게 인사하자 디오게네스는 그 말에 수긍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오.

모든 욕망을 정복한 디오게네스,
정복을 향한 욕망의 노예였던
알렉산더 대왕이 다시 만났구려.


이렇게 응수하면서. “당신만이 (…) 가장 쉽고 빠른 행복의 방식을 가르쳤다.” 디오게네스의 추종자들은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하며 기렸다고 한다.


※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e·1824~1904)

19세기 당시 가장 유명했던 프랑스 화가이자 조각가 중 한 명. 신고전주의 화풍의 그는 손기술은 물론, 다루고자 하는 인물의 사연을 그림 한 점에 명징하게 담을 수 있을 만큼 출중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고 있었다.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을 가졌기에, 동시대의 ‘반항아’ 에두아르 마네와 그 무리를 경멸했다고 한다. 그 시절 제롬의 제자는 2000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작은 ‘디오게네스’, ‘법정의 프리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등.



<참고 자료>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박홍규, 필맥
디오게네스의 햇빛, 프랑수아즈 케리젤,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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