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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 중 하나가 ‘효율’이다. 내 아침 루틴 중 하나는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이다. 나는 바리스타가 아니니 어설퍼도 매일 나만의 방식과 리듬으로 충실하게 커피 내리는 의식을 치르고 싶다. 어학사전에 ‘효율적’이란 단어의 뜻을 물으면 이런 답이 나온다. ‘들인 노력에 비하여 얻는 결과가 큰 것.’ 드립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이와 반대다.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이고, 주둥이가 긴 주전자로 쪼르르 물을 따르며 커피 가루가 구름빵처럼 봉긋 올라오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간은 분명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일상의 기쁨 remark 은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몸과 시간을 쓸 때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던가. 한옥을 좋아하는 것도 이 오래된 집이 인간적 정서와 낭만을 효율보다 우선에 둔다고 믿는 덕분이다. 한옥은 늘 마당을 중심에 두고 그에 따라 방을 배치하는데 ‘마당에서 볕 쬐고, 수박 먹고, 낮잠도 자는 즐거움이야말로 집의 기쁨 아니겠는가?’ 하는 선조들의 태도가 좋다.
새마을금고 이율 한옥이 아닌 다른 집이나 상업 공간에서도 나는 낭만을 찾는 편이다. 숨구멍이라고 할까. 모든 공간을 쓸모와 기능으로만 채운 곳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최근 큰 숨구멍으로 좋았던 두 곳을 다녀왔다.
먼저 찾은 곳은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카페 ‘아유 스페이스’.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이곳은 하늘에서 보면 건물의 중심부가 큰 원 시중은행이자율 으로 뻥 뚫려 있는 모습이다. 이곳의 쓸모는 중정. 꽤 넓은 크기인데 커다란 바위만 두어 개 갖다 뒀을 뿐 꽃 한 포기 심지 않아 단호한 기백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건물 밖 풍경도 해방감을 느낄 만큼 넓고 시원하다. 북한강을 따라 놓인 수백 m의 산책로까지 잘 정비돼 있다. 조 건축가는 건축가가 되기 전 벽제 산골로 들어가 도자를 구웠는데, 세상의 효율로 건축공사 원가계산 부터 격리돼 혼자의 리듬으로 자연의 충일함을 맛본 경험 덕분인지 모든 건축물에 어떤 인간적 이상(理想)이 투영돼 있다. 계절을 느끼고, 바람을 맞고, 달과 나무를 바라보는 원초적 편안함과 즐거움 같은 것 말이다.
또 하나의 공간은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있는 전시 공간 ‘TTOS’였다. 이곳은 몇 달 전부터 ‘지극히 사적인’이란 부 교사주5일제 제를 달고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지극히 사적인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사진작가 김승렬과 함께하는 ‘형상: 존재의 표현’. 관람객은 약 두 시간에 걸쳐 작가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잊히지 않는 기억이나 꿈처럼 극히 사적인 것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오히려 낯선 타인이라서 더 솔직해질 수 있다. 전시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루에 한 명이다. 대화를 하며 생각에 잠기거나 활짝 웃는 내 모습이 전시장에 있는 벽과 스크린을 통해 사진으로 우르르 투사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꼼짝없이 이 전시와 공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고 만다. 아니 어느 누가, 또 공간이 나를 위해 두 시간을 온전히 쓴단 말인가!
효율은 똘똘이 스머프처럼 늘 똑똑한 척을 하지만 여기에만 함몰되면 자칫 진짜 경험은 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헛똑똑이’가 되고 만다. 공간의 힘과 매력은 때론 은근하고 때론 과감한 숨구멍에 있으니, 이 땅의 건축주들이 모든 공간을 쓸모와 돈으로만 꽉꽉 채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